테라피

self-compassion

마몸 2010. 11. 15. 04:04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연습은 주로 비폭력 대화(NVC)의 '자기 공감' 과정으로 해왔고, 이론적 근거에 대해서는 불교와 심리치료의 만남(DVD)의 거머 박사 설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자기 연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자기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 순간순간의 경험에 대해서 수용하는 힘,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몸의 느낌을 자각하기, 그리고 음미하기.

가장 먼저, 제일 중요한 자기 고립에서 벗어나기에 대해서 말한다.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고도 가끔 무심하거나, 이에 대한 해결책 혹은 도움을 시도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면에는 '세상은 원래 그래' 라든가 '나의 이런 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어.' 혹은 '나만큼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은 없을거야.' 와 같은 믿음이 깔려 있다. 이런 생각들은, 자신이 힘들 때, 연민으로 처한 상황을 바라보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것 같다. 자기-고립이라고 불리는 이런 상황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마치 마음에 독버섯이 자라나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을 세상과 차단시키기 때문에, 부정적인 요소 말고도, 긍정적인 자원들까지 차단시켜서, 자신을 점점 마르게 한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게, 주변에서 어려움에 대한 이해와 도움, 혹은 공감이나 정서적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독버섯이 자라난 이후에는 이런 도움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open 하고 나눌 때에만 다시 회복이 가능하다. 굉장히 예방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예후는 심각하다. 외부의 지원이 물론 훨씬 더 수월하겠지만, 자기-연민으로 이런 고립은 어느 정도 방지되는 것 같다. 

자기-연민을 가지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는 고립과 달리, 이 고통이나 어려움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을 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각자가 가진 다양성 만큼이나 고통은 다양하겠지만, 사람들마다 내가 겪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는 걸 염두에 두게 된다. 이럴 때 고통은 내가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만큼, 타인에 대해서도 연민을 가질 수 있는 훌륭한 과정이 된다. 

자기-연민은 거창하게 자신의 큰 실수나 후회하는 행동들에 대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작은 실수, 작은 후회, 놓쳐 지나간 것들 등, 머리 속에 잠깐이라도 맴도는 행동들이 전부 자기-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작은 것들에 대해서 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다른 한면으로는 내게 중요했지만, 기존의 시각으로는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사건들에게까지 연민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기-연민은 과정으로서 순환적으로 동작하게 하는 게 좋다. 즉, 자기-연민을 노력하는 와중에, 자기-연민을 놓쳤다 하더라고, 이 자체를 다시 자기-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연민을 더 많이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과정으로서 자기-연민을 하게 되면, 순간순간의 경험들에까지 면밀하게 수용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컨디션이 어느 정도 될 때만 자기-연민이 가능하고,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을 때에는 무자비한 자기-비판이 주어지는 것도 그리 달갑진 않을 것이다. 처음에 할 때에는 이런 과정도 괜찮다. 자기-비판의 순환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연민을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무자비하게 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컨디션 좋을 때 자기-연민을 많이 연습해 놓는 게 좋다. 그러면, 커다란 진폭을 그리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늘어난 자기-연민 만큼 진폭의 크기가 잦아들 것이다. 어느 정도 이런 힘이 생기면 내려가는 순간에 자신을 붙잡을 수 있다. 자신을 멈추기 위해서 쓰이는 방법은 실재하지 않는 생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몸의 느낌에 의지한다. 자기-연민이 자기-비판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몸에 생기는 느낌에 대해서 계속해서 나타날 때마다 이름을 붙여준다. 그렇게, 계속해서 느낌에 이름을 붙여주다보면, 생각으로 가는 에너지가 차단되어, 더 심한 자기-비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은 강렬하게 일어났다가도 다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 잦아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다시 컨디션이 회복될 때 즈음 자기-연민을 시작하면 상당히 나아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들은 모두 기분이 악화되기 시작할 때 사용하는 방법들이다. 이런 방법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몸에 저장되어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이다. 주관적인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기분이 악화될 때 주의를 돌리기 수월하다. 위에서는 몸의 느낌을 자각함으로서 감정을 붙드는 방법을 소개했지만, 주의를 돌려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있다. 처음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서 긍정적인 감정이 흐를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주의가 돌려진 상태에서 자기-연민으로 사건을 바라보거나, 사건을 대상화하거나, 생각에 거리를 두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 경험에 축적해 놓은 긍정적인 에너지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경험을 함으로써도 쌓아놓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것에 대해서도 음미함으로써 쌓아놓을 수 있다. 그렇게 민감해 질 수록, 우리가 놓치고 지나갔었던 것들에게 대해서도 음미할 수 있는 감식력이 생기기 때문에, 굳이 멀리 찾아가거나, 시간과 돈을 들여 경험을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음...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서 이런 네 가지 정도들이 자기-연민과 관련이 되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만약 이것들만으로 자기-연민이 자라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것들이 자기-연민과 관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