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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를 해석하는 방식

마몸 2010. 4. 3. 23:21
물고기 그림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오병이어라고 한다. 다섯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였다는 말이다.

예전 하비람 갔었을 때, 성경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그 안에 담긴 상징을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살짝 검색해 보니 오병이어에 담긴 상징을 풀어놓은 글이 있다. 출처는 개인 블로그이지만 한 번 생각해 볼만하다.

...예수가 빵 몇개와 물고기 몇마리로 오천명을 먹였다는 이야기에 대해,
사실은 사람들 대부분이 먹을것을 싸왔지만 남들과 나눠먹기 싫어서 없는 척 하고 있었는데,
예수가 먼저 빵과 물고기를 나눔으로 해서 사람들이 각기 음식을 꺼내어 나누기 시작했단 것이죠.
결국 이 이야기는 "예수가 신의 아들로서 기적을 행했다"가 아니라, 
"예수에 의해 사람들이 나눔의 미덕에 대해 깨우쳤다"는 것이 골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기적들은 이런 식으로 교훈이라던가 상징으로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우리의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이죠....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no=122413

신화나 고전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당대 사람들에게마다 다양하게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게 고전이 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나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종교에 대한 나의 입장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해석이 더 맘에 든다.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하지만, 종교의 시대를 겨우 벗어난 현대인들에게, 합리성 없는 종교 역시 받아들여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비람에서 해석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보시기 참 좋았다."는 구절은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자신을 닮게 만들어서 보시기 좋았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온전함이 우리 존재라는 걸 말하기도 한다. 숨 쉬고, 느끼고, 살아있는 자체의 온전함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나 할까. 

자신에 대한 이 관점은 세상을 보는 관점과도 통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엄격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엄격한 것처럼, 내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은 내가 '나'와 관계하는 방식의 확장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연관짓다 보면 내가 세상이라고 말하는 건, 어쩌면 내가 가진 세상에 대해 어떻게 관계맺음하고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즉, 사람들끼리 서로 세상이라고는 말하지만, 천명의 사람에게는 천개의 세상이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부처가 말한 무상함도 모든 것이 변화하므로 덧없다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을 통해 고통 역시 변화한다는 걸 일깨워 주는 말이다. 고통을 느끼는 나 자체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걸 통해, '나'라는 개념 자체도 흔들어 놓는다. 이를 통해, 슬픔을 느낄 때 나는 슬픔이 아니며, 기쁨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기쁨 그 자체는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단지 슬픔과 기쁨을 "앎"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존재함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종교는 언어를 통해 표현하지만, 언어로 하면 종교에 따라 달라지며, 말이 안되기도 한다. 또 다시 내게 남겨진 것은 경험하는 것~ 당분간은 수행만이 길일 듯~